브라우저에서 포토샵 파일을 열다
Photopea가 혼자 만든 웹 편집기로 3억 5천만 사용에 이른 과정을 따라간다.
2012년, 체코 프라하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던 이반 쿠츠키르는 포토샵의 PSD 파일을 웹사이트에서 열어 보고 싶었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레이어 목록을 표시하고, 각 레이어를 숨기거나 다시 보이게 하는 도구가 출발점이었다. 그는 이미 웹 게임을 만들어 광고로 월 100~400달러를 벌고 있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즐겼다. Photopea도 학업과 병행하며 남는 시간에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14일 공개된 첫 버전은 PSD 파일을 읽어 화면에 표시하는 수준이었다. 확대와 축소, 화면 이동, 레이어와 마스크 이동, 실행 취소 같은 기능이 들어갔다. 지원하는 색상 형식은 제한적이었고, 포토샵 파일에 저장된 효과를 전부 재현하지도 못했다. 쿠츠키르는 이렇게 작동 범위가 좁은 프로그램부터 세상에 내놓았다.
개발 과정에서 곧바로 부딪힌 문제는 파일을 읽은 다음에 있었다. 어도비가 공개한 PSD 문서는 파일에서 숫자와 문자열을 꺼내는 방법을 설명했지만, 그 데이터를 조합해 포토샵과 같은 이미지를 그리는 과정까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쿠츠키르는 레이어를 섞는 방식과 그림자 같은 효과를 직접 구현해야 했다. 첫 공개 글에는 입체적인 테두리를 만드는 효과의 작동 원리를 아직 모르겠다며 독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속도도 해결해야 했다. 초기 Photopea는 자바스크립트로 작성됐으며, 브라우저가 이용자 컴퓨터의 CPU로 이미지를 계산했다. 레이어와 효과가 많은 파일은 화면에 표시하는 데 몇 초가 걸렸고, 조금만 수정해도 이미지 전체를 다시 합성했다. 그는 이 상태를 공개하면서 계산 결과의 재사용과 그래픽 처리 장치 활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16년 9월에는 월 5달러짜리 프리미엄 계정을 도입했다. 당시에는 결제해도 추가 편집 기능이 생기지 않았고, 계정 버튼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유료 계정 안내문은 이용자가 향후 개발에 필요한 돈을 보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료 이용자에게 편집 기능을 그대로 제공하면서, 제품을 응원하는 사람에게 비용을 낼 통로를 마련한 셈이다.
사업에 대한 확신은 광고에서 나왔다. 쿠츠키르는 2017년 광고를 붙여 월 400달러를 벌었을 때 비로소 Photopea의 가능성을 믿게 됐다고 회고했다. 개발을 시작한 뒤 약 5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무료로 제공하던 편집기가 사람들을 모으고, 그 이용이 실제 수입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같은 해 4월에는 Sketch 파일을 여는 기능을 추가했다. 당시 맥에서 사용하던 Sketch의 작업 파일을 브라우저로 가져와 레이어와 텍스트를 살펴보고 수정할 수 있게 됐다. 색상과 그라데이션을 바꾸거나 PSD로 저장하는 작업도 지원했다. Photopea가 처리하는 범위는 포토샵 파일을 넘어 다른 디자인 프로그램의 작업물로 넓어졌다.
쿠츠키르가 정리한 개발 원칙에는 기존 파일 형식과의 호환성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고급 편집 기능을 비용과 기기 제약 없이 이용하게 하고, 여러 프로그램의 파일을 지원하며, 특정 소프트웨어가 사라져도 작업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디자인 파일에는 완성된 그림뿐 아니라 수정에 필요한 레이어와 텍스트가 들어 있다. 그 구조를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이어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이 Photopea의 개발 방향을 결정했다.
초기 홍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쿠츠키르는 포토샵 대안을 소개하는 글마다 댓글을 달고, 레딧과 해커뉴스에도 Photopea를 알렸지만 게시물과 댓글의 약 90%가 자기 홍보로 분류돼 삭제됐다고 말했다. 유튜버들에게 리뷰를 부탁했을 때도 대부분 답이 없었고, 답한 사람들은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요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별도의 부탁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리뷰와 사용법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 글과 영상이 새로운 이용자를 데려왔다.
2017년 말까지 Photopea를 방문한 사람은 누적 250만 명을 넘었고, 사용 시간은 12만 시간에 달했다. 쿠츠키르는 프로그램 작성뿐 아니라 도구 아이콘, 로고, 공식 블로그 글까지 직접 만들었다. 이용자가 보낸 버그와 기능 요청도 400건 해결했다. 사용자 반응이 좋아지자 그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마음먹었다.
2019년에는 이용자들이 Photopea에서 작업한 시간이 연간 500만 시간으로 늘었다. 쿠츠키르가 공개한 당시 수입은 약 25만 달러였으며, 이용 시간 한 시간당 평균 약 5센트를 벌었다고 설명했다. 무료 편집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고 작업 시간이 쌓이면서, 학생 시절의 취미 프로젝트가 생활을 충분히 책임지는 사업으로 성장했다.
파일 호환성 확장도 계속됐다. 2020년에는 Figma 파일을 열어 디자인 구조와 스타일을 가져오고 PSD로 저장할 수 있게 했다. 2021년에는 Illustrator 파일을 지원하면서 도형의 경로와 그룹, 편집 가능한 텍스트 등을 읽어 들였다. 각각의 프로그램에서 만든 작업물을 브라우저 안으로 가져와 수정하는 기능이 차곡차곡 늘어났다.
2021년 4월, 쿠츠키르는 직전 12개월 매출이 100만 달러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약 90%는 광고에서 나왔고, 나머지는 광고를 없애는 프리미엄 이용권과 자체 서버에 설치하는 버전의 라이선스 판매에서 발생했다. 같은 해 9월 인터뷰에서는 월간 방문 횟수가 1천만 회, 월간 사용 시간이 150만 시간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용자가 직접 돈을 내지 않아도 사업이 성장하는 수익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이 규모를 감당하는 데에는 프로그램의 실행 방식이 중요했다. Photopea는 웹사이트에서 편집기 코드를 불러온 뒤, 핵심 이미지 처리를 이용자 기기에서 수행한다. 기본 편집을 위해 모든 원본 파일을 운영자의 서버로 보내 계산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용자가 많아져도 그들의 이미지 편집 연산을 처리할 서버를 같은 비율로 늘릴 필요가 없었다.
2021년 쿠츠키르가 공개한 웹 호스팅 비용은 연간 50달러였다. 이후에는 트래픽이 커져 연간 600달러짜리 요금제로 옮겼다고 2026년에 설명했다. 호스팅 업체로부터 다른 고객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트래픽을 사용한다는 연락을 받은 뒤였다.
웹으로 배포하는 방식은 유지보수 부담도 줄였다. 별도의 설치형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 버전을 개발하고 관리해야 하며, 이용자가 업데이트하지 않아 이미 고친 오류를 다시 신고하는 문제도 생긴다. 쿠츠키르는 독립 실행 버전을 요구하는 질문에 이런 부담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웹 편집기는 수정한 코드를 배포해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경로를 단순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사용자 지원은 기능 개발과 직접 이어졌다. 2020년 쿠츠키르는 깃허브에서 해결한 이슈가 2,300건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2021년 해커뉴스 토론에서는 특정 색을 투명하게 바꾸는 김프의 ‘Color to Alpha’ 기능이 화제에 올랐다. 그는 같은 토론에 Photopea에도 해당 기능을 추가했다는 댓글을 남겼다.
팀을 꾸리려는 시도도 있었다. 쿠츠키르는 2021년 인터뷰에서 여러 프로그래머와 협업하고 있으며, 자신 없이도 운영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파일 저장 기능인 Peadrive와 일부 필터는 다른 개발자들이 만들었다. 다만 그는 작업을 설명하고 결과를 검수하며 수정을 요청하는 과정이 어려웠고, 직접 구현하는 속도를 중시해 대부분의 개발을 계속 맡았다고 설명했다.
제품은 수익이 커진 뒤에도 기술적으로 확장됐다. 2024년 4월에는 16비트와 32비트 색상, 그래픽 처리 장치를 이용한 가속을 지원하면서 더 많은 색상 정보를 담은 PSD를 열고 저장할 수 있게 됐다. 밝기를 크게 조정할 때 색의 변화가 거칠게 끊기는 현상을 줄이는 등 정밀한 편집에 필요한 기능이었다. 첫 버전에서 제한적으로 지원했던 이미지 처리 범위를 10년 넘게 넓혀 온 결과였다.
쿠츠키르가 2026년에 공개한 집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Photopea는 3억 5천만 회 사용됐고 이용자들이 연 파일은 10억 개에 달했다. 개발을 시작한 지 14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는 졸업 후 Photopea 개발이 자신이 가져 본 유일한 직업이었다고 말했다.
사업을 팔 기회도 있었다. 쿠츠키르는 연간 50만 달러를 벌던 시절 500만 달러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그 돈이 자신의 생활을 훨씬 낫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Photopea를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일이 즐거웠고, 매각한 뒤 그만큼 재미있는 일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걱정했다. 그는 계속 제품을 소유하고 만드는 쪽을 택했다.